logo

땅지기칼럼

 

벼랑끝에 서는 용기

  • 땅지기
  • 조회 : 201
  • 2022.10.21 오전 08:29

예수님의 시신앞에서 남겨진 이들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나뉜다

장례를 위해 자신을 내어드리는 이들과 여전히 돌이킬 줄 모르는 지도자들의 모습이다.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요셉은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스스로 벼랑끝으로 자신을 몰고 간다

그는 부자였으며 존경받는 공회원이었다.

그런 그가 죄인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벼랑끝의 선택을 한다

그가 갖고 있던 온갖 기득권을 져버릴 수 있는 용기는 두려움을 뚫고 하나님 나라에 이르게 한다.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내 안의 죄와 죽음의 문제와 인생이 겪고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고 담당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주의 백성들의 영혼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지길 원하신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세상의 법이 의가 아니다

의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의이고 그 말씀대로 살아 내는 사람들이 의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말씀으로 오셔서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며 따라서 

성도는 그 예수님안의 평강과 희락을 누리는 자들이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일찍이 예수님에 대해서 알았고 그분이 메시야라는 것도 알았던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가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그분 앞에 나아갈 수 없었던 것은 그가 가진 것이 너무 많아서였다.

그러나 예수님의 운명을 목격하면서 이분만이 참 메시야라는 확신을 가진 후 그는 용기를 낸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당돌하다의 뜻은 용기를 내다의 뜻이다

이제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진리를 위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해야 할지 명확하게 알고 난 뒤의 요셉의 행동이다

당돌하다의 또 다른 뜻은 견뎌내다이다.

현재 쥐고 있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해도 구원자 되신 예수님을 모실 수 있다면 쥔 손을 펴서 내어 던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 때문에 당돌한 사람이 되라.

33세의 젊은이가 객사하여 살이 찢기어 이리 저리 흩어진 처참한 몰골이지만 그 젊은이의 죽음앞에 심장의 진동이 있는 것은 

그가 바로 나 때문에 그 고통을 당하였기 때문이다

요셉의 심장이 그렇게 떨림으로 그는 주님의 찢기인 몸을 씻기고 세마포로 덮을 수 있었다.

또 다른 심장의 떨림을 느낀 니고데모도 요셉과 함께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고 치루어 낸다

예수님의 장례는 그들을 그토록 사랑했던 제자들이 몫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오늘 예수님의 몸인 교회들은 어떤 모습인가

찢기고 분열되고 아파서 숨을 쉴 수 없지만 외면하고 있지는 않는가

지금 우리는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여 다시 치러야 한다

갈기갈기 찢겨진 가정과 흩어진 영혼으로 방황하는 자녀들을 꿰매고 분열되고 찢기인 예수님의 몸인 교회를 세마포로 감싸야 한다. 우리가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되어야 한다.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조회
  • 1
  •  벼랑끝에 서는 용기
  • 2022-10-21
  • 땅지기
  • 202

게시글 확인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

게시글 삭제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

게시글 수정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