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끝자락은 후회할 것들이 많은지,
행복하게 성장했던 시간이 많았는지를 점검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우리의 삶이 후회로만 남는다면 가장 먼저 자아 정체성이 무너지게 된다.
그리고 죄책감과 수치심만 남아 현재를 살아갈 힘을 잃어버린다.
후회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후회를 해석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말씀안에서 후회가 깨달음으로 해석되었다면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된다.
후회의 해석에 따라 감옥이 될 수도 있고 생명의 문이 될 수도 있다.
사도바울은 자신의 삶을 후회했던 사람이었다.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를 죽이며 스데반 집사님의 순교를 동의했던 사람이다.
그랬던 사도바울이 고백하기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후회가 현재를 살아갈 동력이 되고 미래의 소망이 되기 위해서는
첫 번째, 과거의 잘못을 십자가의 사랑앞에 맡기면 된다.
온전한 인생은 없다. 상처와 배신은 인생길에 언제나 놓여 있다.
과거의 아픔을 품고 있으면 전진의 삶은 없다.
그러므로 과거가 십자가앞에서 재해석되어 질 때 앞으로 나아가는 삶이 될 수 있다.
과거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과거에 머물지 않겠다는 선언이 삶의 방향을 결정짓게 한다. ‘
잊어버린다’는 것은 과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과거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자신의 모든 과거를 짊어지셨다는 것을 믿었다.
잊는다는 건, 내 삶의 지배권을 예수님께 내어드린다는 의미다.
그때 비로소 현재를 살아가게 된다.
두 번째, 십자가 앞에서 현재를 살아야 한다.
사도바울이 서신서에서 가장 많이 쓴 표현이 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이다.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새로움이 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실패의 쓴 잔을 마실 수 있다.
이때 뒤돌아보며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붙들면 된다.
붙듬은 새로움으로 시작된다.
후회는 행동 이전의 정체성의 문제이다.
예수안에 있다면 부르심의 소명을 고백할 줄 알아야 한다.
각자의 역할과 서 있는 그곳이 부르심의 자리이다.
그래서 십자가앞에서 현재를 살아갈 수 있다.
오늘의 삶이 완성이 아니라 되어져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과거를 묻지 않고 사명을 말씀하신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세 번째, 부르심의 상이 있는 미래를 바라봐야 한다.
임마누엘 하나님과 동행하며 과거를 재해석 할 수 있는 사람은 푯대를 향하여 간다.
인생에 있어 열심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목표가 분명한 방향이다.
그러므로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성벽을 재건한 느헤미야는 자신의 약점을 공격하며 방해하는 이들을 신경 쓰지 않고 푯대를 향하여 전진하였다.
푯대가 분명하면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
2025년 한 해는 과거로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2026년을 다시 달려야 할 푯대를 향해 갈 수 있다.
지나간 것을 지나간대로 이유가 있다.
롯의 아내는 과거를 놓지 못해 뒤돌아보았고, 모세는 부르심을 붙들어 방향을 얻었다.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을 향해 가며 푯대를 향해 달리라고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권면한다.
과거는 풀리고 현재를 사는 힘을 얻어 미래를 향해 달려가라고 한다.
상처가 없는 이는 없다.
다만 덜 아픈 사람이 더 아픈 사람을 안아주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 안아주며 푯대를 바라보며 예수안에 있는 삶으로 부르심의 자리에 있어 새로움으로 시작되는 새해가 되어야 한다.
위로받은 자로 사명의 길에 서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온전한 오늘로 사는 것이 충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