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을 준비하라.
성도의 기다림은 재림이다.
이스라엘 문화에서 신랑을 신부의 집으로 맞이하는 들러리가 있다.
그 역할을 신부의 친구들이 담당한다.
또한 유대인의 결혼식은 밤에 이루어진다.
그들은 저녁을 하루의 시작으로 본다.
그들은 죽음을 시작으로 보는 문화이다.
죽어야 태어나는 것으로 여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쉬신 것처럼 인간도 쉼으로부터 시작한다.
영적으로 바라볼 때 모든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에서 죽는 것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지 않으면 예수님의 제자로 걸어갈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재림의 비유로 열 처녀를 말씀하셨다.
등은 신앙을 의미한다.
본문은 재림의 순간 절반만 구원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구원의 가치,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모르면 예수님보다 더 좋은 것을 찾게 되면서 인생을 풍요롭게 살아갈 수 없다.
신랑을 기다리던 열 처녀 중 다섯은 가치를 알지 못하여 놓쳐버리는 인생을 살게 된다.
기름을 미리 준비한 다섯 처녀만이 신랑을 맞이하여 신부집으로 안내하게 된다.
열 처녀는 같은 장소, 같은 시간, 같은 등불, 같은 목적을 갖고 그 자리에 있었다.
다만 차이점은 기름의 유무로 미련한 처녀와 지혜로운 처녀로 구분된다.
기름은 성령의 다스림을 받느냐는 것이다.
진정한 믿음이 있는지 내적인 신앙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다.
“나는 정말 준비되어 있는가?”
신랑이 오는 그 순간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느냐이다.
예수님의 비유는 재림의 때에 참 성도가 누구인가 드러난다고 이야기하신다.
그러므로 깨어 준비하며 기다리는 성도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등은 외적인 모습이다.
주일이면 교회에 출석하여 헌금하고 헌신하고 봉사도 한다.
그러나 이것보다 예수님께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내면의 것을 중요하게 보셨다.
말씀 속의 기름은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신 성령이 역사하시는 기름부으심의 상태, 즉 신앙의 본질을 기름으로 표현한다.
기름을 준비하는 신앙은 말씀으로 삶을 채우는 신앙이다.
또한 기도로 영혼의 호흡을 유지하는 신앙이며, 거룩한 삶을 위해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신앙이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는 신앙을 의미한다.
그러나 기름이 떨어진 삶은 주일 예배는 드리지만 삶의 열매가 없는 신앙이다.
또한 감정적인 신앙은 있으나 인격적 신앙은 없는 신앙이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주유소와 같다.
나의 감정이 날카로울 때 기름을 충전해야 한다.
또한 종교 행위는 있으나 성령의 능력이 없는 신앙이다.
모든 일에는 준비가 필요하다.
준비한 만큼 삶은 풍요로워진다.
재림의 때에 준비된 성도도 마찬가지다.
준비된 자는 그날이 잔치가 될 것이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노아는 말씀에 따라 준비한다.
노아는 기름을 준비한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성령의 지속적인 공급하심 가운데 있었다.
열 처녀는 신랑이 더디 오므로 지치고 힘들어 잠들었다.
기름을 준비한 자들도 마찬가지로 졸았다.
그러나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는 순간을 딛고 일어선다,
성도도 그렇다.
기름부으심가운데 있으면 일어설 힘이 있다.
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기름이 있느냐이다.
‘그런즉 �어 있으라 너희는 그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기름을 준비한 자는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
준비된 자는 예배와 섬김에 온 마음을 다한다. 또
한 말씀과 기도가 삶의 지표가 된다.
그래서 성령의 다스림가운데 들어가 있는 것이다.